[인터뷰] 행복나래 임은미 실장 "사회적 가치도 이젠 경영의 언어"

등록일 : 2025-12-30

행복나래 임은미 실장 "사회적 가치도 이젠 경영의 언어"

행복나래, 연매출 8000억원 전액 사회 환원 구조 실현
120개 기업·150개 지자체 참여하는 행복얼라이언스 구축
"사회공헌도 시스템" 민관협력 통한 지속가능성 높여야

 

임은미 행복나래 소셜밸류(Social Value) 혁신본부 실장 [사진: 행복나래]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기업의 사회공헌이 '생존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착한 일'으로만 여겨지던 ESG 경영이 기업 평가의 핵심 지표로 자리잡으면서 사회적 가치 창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에 임은미 행복나래 소셜밸류(Social Value) 혁신본부 실장은 "사회적 가치가 이제는 경영의 언어가 됐다"고 말했다. 

행복나래는 SK그룹이 설립한 사회적기업이다. SK하이닉스의 자회사로 SK 계열사들에 소모성 자재부터 미드레인지급 부품까지 공급하는 구매서비스 회사다. 연매출 8000억원에 달하지만 2011년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해 주주 무배당을 선언하고 이익 전액을 사회공헌에 투자하는 독특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임 실장은 "돈을 버는 조직과 돈을 쓰는 조직이 분리돼 있다"며 "비즈니스로 벌어들인 수익을 저희 소셜밸류 혁신본부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여러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형태로, "돈을 벌어서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업 안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델을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SK네트웍스와 미국 그레인저가 합작해 만든 조인트벤처였지만 2011년 최태원 회장이 "비즈니스 자체에서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사회적기업으로 전환을 제안했다. 당시 대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로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매각하던 시기에, SK는 사회 환원이라는 대안적인 선택을 내렸다.

그 결과 행복나래가 만들어졌고, 해당 조직이 운영하는 '행복얼라이언스'는 지금 120개 기업과 150개 지자체가 참여하는 국내 최대 사회공헌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기획서 들고 다니던 10년전...지금은 기업이 먼저 찾아와

행복나래가 운영하는 행복얼라이언스는 2016년 14개 기업으로 시작했다. 임 실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엔 기획서를 들고 다니며 설명해도 '사회공헌을 함께 한다'는 콘셉트 자체를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기업들은 "사회공헌은 따로, 사업은 따로 하는 게 맞지, 어떻게 같이 하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하나씩 설득해 나간 결과, 현재 약 12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누적 150개 기초지자체와 협약을 맺어 8400명의 결식우려아동에게 190만식을 지원하는 성과를 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15만3000명을 넘어섰고, SM엔터테인먼트, 비타민엔젤스, 일룸, 하나은행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들이 먼저 찾아와 참여 의사를 밝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성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임 실장은 네 가지 전략적 설계를 꼽았다. 우선 '아이들 굶기지 말자'와 같은 문제점에 맞춰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문제에 집중했다.

임 실장은 "하나의 사회 문제에 포커스하면서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누구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계속 끊임없이 소구했다"며 "일반 시민분들도 '아, 필요하다, 해결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아젠다였기에 기업들도 공감대를 형성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행복얼라이언스가 진행한 '2025 하반기 주거환경개선 프로젝트'에 SK이노베이션 E&S, 전자랜드, 일룸, 이브자리, 따뜻한동행, 행복나래 등 6개 멤버기업이 참여해 총 5300만원 상당 가구, 가전, 침구류 등을 아동 가정에 맞춰 제공했다. [사진: 행복나래]


사회공헌 전담조직이 없는 기업들을 위한 효율적 프로그램 제공도 주효했다. 많은 기업이 홍보팀이나 인사팀에서 사회공헌을 담당하는데, 재원과 리소스 부족으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 실장은 "저희가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 홍보까지 A부터 Z까지 패키지를 만들어 제공하니 그 효율성과 효과성을 굉장히 많이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참여 방식의 다양화도 중요한 요소였다. 현금 기부뿐 아니라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 재능기부, 자원봉사까지 다양한 길을 열어뒀다. "회원가입비나 후원금 얼마 이상을 내야 한다는 제약이 없어요. 서비스만 있는 기업은 서비스를 연결해서 아이들을 도와주셔도 됩니다. 진입 장벽을 굉장히 낮춰서 여러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설계했죠."

마지막으로 행복나래가 운영비를 부담해 기업 기부금 전액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임 실장은 "다른 NGO와 달리 100% 수혜자에게 간다는 점이 굉장히 큰 강점"이라며 "행복나래가 버는 돈으로 일정 부분 기여하기 때문에 멤버 기업의 기부금은 전액 다 아이들한테 가는 형태"라고 강조했다.

 


◆문제 재발 막는 구조적 변화가 진짜 사회공헌...민관협력 핵심은 '역할 분담'

'행복두끼 프로젝트'는 민관협력 모델의 대표 사례다. 기업이 일정 기간 결식우려아동을 지원하는 동안 지자체는 예산을 편성하고, 이후 공공 영역에서 지속 지원하는 구조다. 임 실장은 2020년 경기도 시흥시와의 첫 협약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사업 초기 지자체를 설득하는 데 있어 어려움도 많았다. 기업과 지자체가 역할을 나눠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지자체 내부에서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마치 기관이 보조적 역할을 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설득을 이어 가자, 일부 실무자들이 의미를 이해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하는 동안 기업이 먼저 아이들을 케어하고, 이후 공공의 그물망으로 넘어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성공의 열쇠는 명확한 R&R(역할과 책임) 구분이었다. 기업은 발굴된 아이들을 정해진 기간 동안 지원하고, 지자체는 그 사이 예산을 편성해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임 실장은 "기업이 할 수 있는 일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표는 동일했지만 할 수 있는 역할은 너무 다르다"며 "처음부터 역할을 분명하게 나눠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민관이 협력하면 예산 파이가 늘어나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계속 지원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임 실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기업만으로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결국 지역사회 아이들은 그 지역이 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2025 SK프로보노 성과공유회'에서 지동섭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사진 앞줄, 우측에서 다섯번째), 조민영 행복나래㈜(SK프로보노 사무국) 본부장(사진 앞줄, 좌측에서 세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행복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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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프로보노 사업도 같은 철학에서 출발했다. SK 그룹 내 올해만 4200명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는데, 한 번 참여한 구성원들이 계속 이어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특징이다. 임 실장은 "프로보노는 본인이 가진 직무와 전문성이 언제든 필요한 곳에 내어줄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지속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 SK 계열사는 봉사시간을 KPI로 설정하거나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임 실장은 "요즘 MZ세대는 본인이 하는 일의 가치를 굉장히 많이 찾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 외에도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만족감이 높다"고 덧붙였다.

임 실장은 "최태원 회장이 다른 기업들께 직접 '함께 참여해 달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애정이 많고, 문제 하나는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며 직접 행복얼라이언스 제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직접 다른 기업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일화도 전했다. 

행복나래는 최근 '행복투게더' 사업도 시작했다. 취약계층을 창업자 등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로, 도움받던 사람이 도움 주는 주체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임 실장은 "이런 분들이 많이 나와서 사회문제 해결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표했다.



임은미 행복나래 소셜밸류(Social Value) 혁신본부 실장 [사진: 행복나래]

 


◆확산 가능한 한국형 사회공헌 모델 목표 "착한 일 넘어 생존 전략"

20년간 사회적 가치 생태계를 지켜본 임 실장의 평가는 간결했다. 임 실장은 "사회적 가치는 예전엔 착한 일, 하면 좋고 안 해도 되는 일 정도였다면, 지금은 정책 단위로 제도화되는 언어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ESG가 경영 지표가 되고 성과 지표나 KPI로도 활용되면서 경영의 언어가 됐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남았다. 누가 하더라도, 어떤 지역에서 하더라도, 언제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품질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임 실장은 "누구 한 사람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시스템으로 체계가 갖춰지고 있다"면서도 "복제와 확산이 가능한 표준 모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후 목표를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임 실장은 "기업이 사회공헌을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인식 하에, 합리적으로 하고 싶은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가 착한 일을 넘어 경영의 필수 언어로 자리잡는 시대, 행복나래가 만든 플랫폼이 한국형 사회공헌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임 실장은 "이제는 기업이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인식 하에 사회공헌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단순히 돕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플랫폼, 그게 우리가 계속 실험하고 도전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